죽도록 -이영광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않는다,라는 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 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 죽도록 공부해 본 인간이나 죽도록 해야 할 공부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저 광고는 결국, 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공부하라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옥상과 욕조와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 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 자정이 훨씬 넘도록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 어둠 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 문학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시 한편 씩을 찾아 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풀이를 해 주는데 가끔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선배가 쓰고 물려 준 사물함에서 발견했다..
소위 인문영재라고 뽑힌 아이들 데리고 훈민정음을 주제로 3시간 수업을 했는데 준비한 것 반도 못했다. 세종이 지었다는 서문 54자, 우리말 번역 108자의 해석조차 간단치 않고 창제 동기도 애민 하나로 단순화하는 건 너무 순진한 접근이다. 결국은 유교이념으로 교화하려는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의 하나였고 한자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를 만들고자 했던 의도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어쨌거나 우리말에 맞고 우주의 이치에 맞고(성리학적, 그리고 음운학, 음성학적)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고 보급한 업적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왕이 쓴 글을 백성이 직접 읽을 수 있고 백성이 쓴 글을 왕이 직접 읽을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사대부들의 특권인 문자의 독점이 무너진 그런..
작년에 담임을 했던 졸업생 아이들... 인문반 남학생 고3 중에서도 특히 더, 결석, 지각, 조퇴가 자유로웠던 아이들. 아침에는 지각으로, 오후에는 조퇴로 대여섯 자리는 늘 비어 있던 교실. 다른 샘들은 다들 얼마나 힘들겠냐고 안스러워 했지만 (솔직히 출석부 입력할 때는 몇 시간씩 걸리니 좀 거시기 했지만) 정작 나는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냈다. 아직까지도 30명 가까이 남아 있는 단톡방에 15일 스승의 날에는 방과후에 나도 나의 은사님 찾아 갈 거니까 학교에 찾아 오지 말라고 (내가 먼저 ㅋ) 말했더니 굳이 그날 점심시간에 찾아 오겠다고들... 대학 간 아이들도, 대학 안 간 아이들도 서로 꺼림이 없다는 게 좋다. 그 중 한 아이는, 작곡가를 꿈꾸며 밤낮을 거꾸로 사느라 출석일수를..
'파투나다'가 표준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이삼일 지난 수업 시간. 수행평가 발표를 해야 할 학생의 파일이 (버전이 높아서인지) 잘 열리지 않아서 발표를 못하게 되었다. 그걸 보고 다른 아이가 "이번 발표는 파토가 난 건가요?" 하고 말했다. "'파토'가 아니라 '파투'가 맞는 말이야" 그러나 그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우기고. 결국 누가 맞나 아이스크림 사주기로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아이가 직접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요즘은 다 그렇겠지만 우리 학교는 교실마다 인터넷선 깔려 있고 단촛점 빔이 설치되어 있다.)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파투나다'가 맞다는 것을 확인. 흐흐흐. 내가 이틀 전에 확인했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르고... "역시~"라며 실력 인정. 근데 그 아이가 며칠이나..
점심 시간, 쉬고 있는데 학생 한 명이 불쑥 들어 오더니 "널판지가 맞아요, 널빤지가 맞아요? "하고 묻는다. 갱상도 출신 국어샘은 표준어에 약하다. ㅋㅋ 이럴 땐 확실하게 인터넷 검색 들어가는 게 안전하다. 앗!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니 나의 예상대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애매할 땐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게 오히려 맞는 말인 경우가 많다. ㅋㅋ) 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은 널판지가 아니고 '널빤지'가 표준어다 널판자, 널판때기도 표준어인데 널판지는 표준어가 아니다. 이래서 사람은 늘 배워야 하는 것이다.